안야 테일러 조이와 마일스 텔러의 조우, SF/호러/멜로 장르를 뒤섞은 애플TV+의 실험작
폐쇄된 협곡 위의 감시자들
애플TV+ 오리지널 영화 “더 캐니언(The Gorge)”은 SF, 호러, 액션, 멜로가 결합된 이색 장르물로, 폐쇄된 협곡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괴수 방어 임무와 감시자들의 이룰 수 없는 로맨스를 주된 줄기로 삼는다. 영화는 리바이(마일스 텔러 분)와 드라사(안야 테일러 조이 분)라는 두 명의 저격수가 협곡 양쪽에서 각자의 감시 임무를 수행하는 설정으로 시작된다. 1년 간 단절된 외부와의 소통, 정체불명의 괴생명체 ‘홀로우 맨’의 감금, 고립 속에서 꽃피는 정서적 교감은 SF 설정 속 멜로드라마적 정서를 효과적으로 끌어낸다.
리바이가 우연히 드라사의 존재를 인식하면서 두 사람은 망원경, 쪽지, 사운드 트랙 공유 등의 방식으로 서서히 교감을 나눈다. 이들의 관계는 마치 팬데믹 시기의 격리된 인간관계처럼 우화적으로 그려지며, ‘거리 두기 로맨스’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신선하다. 하지만 중반 이후 리바이가 협곡 아래로 추락하고 드라사가 그를 따라가면서, 영화는 급격히 액션 호러 장르로 선회한다. 협곡 하단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비밀리에 진행된 생화학 무기 실험의 잔재가 남아 있고, 이로 인해 괴생명체의 정체와 정부 음모가 서서히 드러난다.

배우들의 케미스트리와 그 한계
영화가 성패를 좌우하는 지점은 단연 주연 배우들의 연기력과 케미다. 마일스 텔러는 PTSD를 앓는 전직 해병의 내면을 나름 설득력 있게 그려내며, 안야 테일러 조이는 과묵하면서도 단단한 여성 저격수로서 새로운 액션 연기의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두 배우의 시너지는 일부 장면에서는 로맨틱 코미디의 분위기를 자아내며 매력적으로 작용하지만, 서사 전체를 끌고 가기에는 감정선 구축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일부 평론가는 이들의 관계가 지나치게 이상화되어 현실성을 상실했다고 지적한다.
괴생명체 ‘홀로우 맨’은 T.S. 엘리엇의 시에서 이름을 따온 존재로 설정되어 있지만, 철학적 은유로서의 설득력보다는 단순한 좀비형 괴수의 전형에 머무른다. 연출자 스콧 데릭슨은 『닥터 스트레인지』의 감독답게 일부 장면에서는 시각적 상상력을 발휘하지만, 전반적으로 괴수 디자인과 CG는 B급 괴수 영화의 그것에 가깝다는 평가다. 특히 결말부의 실험실 폭파 및 탈출 장면은 긴장감보다는 설정의 과잉과 전개상의 허술함이 부각된다.
음악과 미장센, 그리고 ‘극장감’
트렌트 레즈너와 애티커스 로스가 맡은 사운드트랙은 영화의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하며, 구예르모 델 토로와 자주 작업한 촬영감독 단 라우스텐의 시네마토그래피는 폐쇄 공간의 음습함과 광활함을 잘 담아낸다. 하지만 이런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TV 스트리밍용으로 소비되기에는 과도하게 장르적이고, 반대로 극장 개봉작으로 보기엔 내러티브의 완성도가 부족하다는 중평이 이어진다.
다수의 평론은 “더 캐니언”의 중심 주제를 ‘사랑’이라 지목한다. 단절과 감시, 위험과 폭력 속에서 오직 인간적 유대만이 이들을 생존으로 이끈다는 플롯은 진부할 수 있지만, 현대인의 고립과 정서적 단절을 은유하는 장치로 기능할 여지가 있다. 특히 팬데믹 이후 장거리 관계, 원격 소통, 비대면 정서교감에 익숙해진 관객에게는 이 영화의 정서적 코드가 의외로 낯설지 않게 다가올 수 있다.

비평가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가디언은 이 영화를 ‘전통적 로맨스 클리셰의 변주’로 보며, 플롯의 허술함과 몰입도 부족을 지적했고, 『Houston Press』는 “SF, 로맨스, 호러가 골고루 섞인 이 영화는 중간은 간다”며 평이한 점수를 매겼다. 『IGN』은 영화 초반부의 장르적 참신함을 인정하면서도 후반부 전개에서 클리셰와 혼란이 심해진다고 평했다. 반면 『RogerEbert.com』의 리뷰는 상대적으로 호평을 보내며, 배우들의 감정선 연기와 ‘불완전하지만 도전적인 로맨스’로서의 가치를 인정했다.
‘더 캐니언’은 명확한 명작도, 참패한 B급 영화도 아니다. 로맨스와 괴수물을 접목하려는 실험은 일정 부분 성과를 거두었지만, 장르 간 이질성, 이야기 구조의 허술함, 클라이맥스의 과잉 연출 등은 아쉬움을 남긴다. 그러나 OTT 시대, 특히 발렌타인데이용 이색 시청작으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낭만과 공포, 전통과 변주의 접점에서 갈팡질팡하는 이 작품은, 오히려 그 어중간함 속에 독특한 존재감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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